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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산서원 전교당(陶山書院 典敎堂)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5. 11. 17. 05:52

    도산서원 전교당(陶山書院 典敎堂)

     

    서원(書院)이란 훌륭한 사람들에게 제사지내고 유학을 공부하던 조선시대 사립교육기관을 말한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처음 세웠다.

    전교당(典敎堂)은 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조선 선조 7년(1574년)에 건립된 대강당이다.

    그 중 전교당은 유생들의 자기수양과 자제들의 교육을 하는 강당으로서,

    전교당의 앞 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건물의 구조는 매우 간소하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강당인 대청과 거실인 온돌방(閑存齋, 한존재)으로 구성되었다.

    쪽마루는 건물 뒷면의 대청 뒷부분과 온돌방의 오른편에만 설치하였다.

    대청의 윗부분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으며,

    선조가 하사(下賜)한 현판의 글씨는 명필인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쓴 글씨이다.

    도산서원 전교당(陶山書院 典敎堂)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10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

     

     

    진도문(進道門)

     

    진도문(進道門)은 도산서원에 출입하는 정문으로 '도리(道理)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진도(進道)란 '학문(學文)을 하여 나아간다는 뜻',

    그리고 '도(道)를 밝히는 것은 우매한 것 같이하고 도(道)에 나아 감에는 물러 서서는 안된다'란 뜻을 담고 있다.

    도산서원을 참관하려면 반드시 이 문을 거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문기둥에 큰 북이 달려 있는데 그것은 잡배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으로 달아 놓은 것이라고 한다.

     

     

     

     

     

     

    도산서원 현판(陶山書院 懸板)

     

    도산서원 사액(賜額)에 얽힌 이야기 전교당에 걸린 도산서원 현판은 한석봉(韓石峯)의 필체인데,

    선조(宣祖)가 조선 최고의 명필 한석봉에게 편액(扁額)을 쓰게 했다.

    선조는 석봉이 놀라지 않게 사액 내리는 서원 이름을 거꾸로 쓰게 해서

    왼쪽에서부터 '원서산(院書山)..'까지는 올바르게 쓰여졌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 도(陶)자에서 퇴계 선생을 기리는 서원임을 알고 너무 가슴이 뛰어

    도(陶)자의 한 획인 “뫼 산(山)”자를 “바를 정(正)”자로 썼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산서원의 편액과 안내문의 "도"자는 서로 다르다.

    이렇게 존경받던 퇴계 이황선생은 오늘날에도 가장 서민적인 지폐인 1천 원권의 인물로 우리 곁에 있다.

     

     

    전교당(典敎堂)

     

    서원의 강당으로 오전(五典) 즉 다섯가지 인간윤리를 가르치는 곳이라는 의미이며

    정면의 편액은 선조의 사액이며 명필 한석봉(韓石峯)의 글씨이다.

    벽면에는 정조의 사제문(賜祭文)과 전교, 원규, 백록동규, 사물잠, 숙흥야매잠, 경재잠, 국기안 등이 게판되어있다

     

    전교당(典敎堂) 대청에 걸린 협판은 도산서원 영건기문(營建記文)이다.

       이 기문은 퇴계의 제자 성성재(惺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599)가 썼다.

     

     

     

    한존재(閑存齋)

     

    강당 서편의 방으로 원장의 거소이다.

    『易經』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의 「용언지신 용행지근 한사존기성(庸言之信 庸行之謹 閑邪存其誠)」에서 취하여

     ‘군자의 덕성은 득중하여 항상 말을 함에 신의로 하며, 항상 행동 함에 근신하여---’라는 말에서

    선비들의 마음가짐을 경계하여 사특함을 막고 정성스러움을 간직하라는 뜻에서 한존재(閑存齋) 라 한 것이다.

     

     

     

     

     

     

    홍의재(弘毅齋)

     

    도산서원(陶山書院)의 서재(西齋)를 말하며 유생들의 거소이다.

    『論語』태백편(泰伯篇)의 「사 불가이 불홍의 임중이도원(士 不可以 不弘毅 任重而道遠)에서

     ‘선비는 가히 마음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될 것이니 그 책임은 무겁고 도학의 길은 멀기 때문이다’ 라는 말에서

    유생들에게 도를 실행하기 위하여 넓고 굳센 뜻을 가지라는 뜻에서 홍의재(弘毅齋)라 하였다.

     

     

    박약재(博約齋)

     

    도산서원(陶山書院)의 동재(東齋)를 말하며 서원 임사원(任司員)의 거소이다.

    『論語』 옹야편의 「박학어문 약지이례 역가이불반의부(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에서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서 단속하면 도에 배치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에서

     ‘박문(博文)’은 지식을 얻는 것이고 ‘약례(約禮)’는 자기 행위를 예의로 절제하는 것을 말한다.

    유생들의 폭 넓은 학문연구와 도덕적 실천을 강조하여 박약재(博約齋)라 하였다.

     

     

     

     

     

    오죽(烏竹)-검은 대나무

     

    벼과에 속하는 상록활엽교목으로 학명은 Phyllostachys nigra MUNRO.이다.

    중국 원산의 왕대속의 일종이나 전래경로와 연대는 미상이다. 줄기의 색이 검기 때문에 오죽이라 불린다.

    오죽은 품위가 우아하여 관상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토양의 비옥도, 수분을 많이 요구하나

    내한성이 다소 있으므로 우리나라 중부 일부에서도 월동이 가능하다.

    오죽은 방풍림 뿐 아니라 정원이나 공원에도 알맞은 수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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