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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양 소쇄원(潭陽 瀟灑園) - 명승 제40호
    국내 나들이/명승(名勝) 2016. 5. 31. 05:09

    담양 소쇄원(潭陽 瀟灑園) - 명승 제40호


    소쇄원(瀟灑園)은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원림(園林)으로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풍기는 아름다움이 있다.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성한 것으로 스승인 조광조(趙光祖)가 유배를 당하여 죽게되자

    출세에 뜻을 버리고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소쇄원이라 한 것은 양산보의 호(號)인 소쇄옹(瀟灑翁)에서 비롯되었으며,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오곡문(五曲門) 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은 폭포가 되어 연못에 떨어지고,

    계곡 가가이에는 제월당(霽月堂,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집)과

    광풍각(光風閣, 비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사랑방)이 들어서 있다.
    소쇄원에는 영조 31년(1755) 당시 모습을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 있어 원형을 추정할 수 있다.

    이곳은 많은 학자들이 모여들어 학문을 토론하고, 창작활동을 벌인 선비정신의 산실이기도 했다.
    지금의 소쇄원은 양산보의 15대손 양택지에 의해 보수된 모습이다.


    =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






    제월당(霽月堂)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집.
    달빛이 은은히 스며들 것같은 제월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안채에 해당하며 방과 대청으로 구성된 평범한 가옥이다.
    가장 높은 양지에 서서 항상 밝은 곳으로 주인의 학문과 사색을 위한 곳이다.




    광풍각 (光風閣)


    비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사랑방.
    계곡과 큰나무들 사이에 있어서 그늘져 시원한 곳으로 손님을 맞아 시가와 주흥을 즐기는 유희적인 곳이기도 하다.









    소쇄처사 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廬, 아름다운 담장)


    소쇄옹(瀟灑翁) 양산보(梁山甫) 선생의 초가집이라고 담장에 새김.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씨임.










    대봉대(待鳳臺)


    봉황을 기다리는 곳, 봉황처럼 소중한 손을 기다려 맞는다는 다정한 뜻이 담긴 곳이다. 주인장을 기다리는 곳이다.




    오곡문(五曲門)이 새겨진 담장


    소쇄원의 영역을 한정해주고 감싸주는 곳이다. 자연스런 토석담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오곡문은 뒤쪽 마을로 향하는 문으로서 두 개의 구멍이 있다.
    맑은 계류가 흐르게 되어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의 서각






    정천(頂泉)


    개울위로 담을 설치한 자연석을 포갠 돌기둥이 담을 떠받치게 하여 운치있고 이채롭다.




    광석(廣石)


    선비들이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창작활동을 하였다.








    애양단(愛陽壇)


    공간을 분리하는 역할을 하는 벽이다.









    제주양씨지소쇄원(濟州梁氏之瀟灑園)


    소쇄원 입구 개울 건너 대나무 숲 초입에는 제주사람 양씨 소유의 소쇄원(濟州梁氏之瀟灑園)이라고 돌에 새겨져 있다.







    소쇄원(瀟灑園)


    소쇄원(瀟灑園)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후원(後園)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內堂)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되어 있다.
    전원(前園)은 대봉대(待鳳臺)와 상하지(上下池), 물레방아, 그리고 애양단(愛陽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원(溪園)은 오곡문(五曲門) 곁의 담 아래에 뚫린 유입구로부터 오곡암, 폭포

    그리고 계류를 중심으로 여기에 광풍각(光風閣)을 곁들이고 있다.
    광풍각의 대하(臺下)에는 석가산(石假山)이 있다. 이 계류구역은 유락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내원(內園) 구역은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으로서

    당(堂)과 오곡문(五曲門) 사이에는 두 계단으로 된 매대(梅臺)가 있으며

    여기에는 매화, 동백, 산수유 등의 나무와 기타 꽃나무가 심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곡문(五曲門) 옆의 오암(鼇岩)은 자라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있다.

    또 당 앞에는 빈 마당이 있고 광풍각 뒷편 언덕에는 복숭아나무가 심어진 도오(桃塢)가 있다.
    당시에 이곳에 심어진 식물은 국내 종으로 소나무, 대나무, 버들, 단풍, 등나무, 창포, 순채 등 7종이고

    중국 종으로 매화, 은행, 복숭아, 오동, 벽오동, 장미, 동백, 치자, 대나무, 사계, 국화, 파초 등 13종

    그리고 일본산의 철쭉, 인도산의 연꽃 등 모두 22종에 이르고 있다.
    소쇄원은 1530년(중종 25년)에 양산보가 꾸민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의 하나로 제월당(霽月堂), 광풍각(光風閣),

    애양단(愛陽壇), 대봉대(待鳳臺) 등 10여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몇 남아 있지 않았다.
    제월당(霽月堂)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을 위한 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광풍각(光風閣)은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

    1614년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역시 팔작지붕 한식이다.
    정원의 구조는 크게 애양단(愛陽壇)을 중심으로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광풍각(光風閣)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가적(道家的)인 색채도 풍겨나와 오암(鰲岩), 도오(桃塢), 대봉대(待鳳臺) 등 여러 명칭이 보인다.
    제월당에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쓴 「소쇄원사십팔영시(瀟灑園四十八詠詩)」(1548)가 게액되어 있으며,

    1755년(영조31년)에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
    소쇄원은 1528년 처음 기사가 나온 것으로 보아 1530년 전후에 착공한 것으로 보여진다.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화순으로 공부하러 갈 때 소쇄원에서 꼭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 있고,

    1528년 『소쇄정즉사(瀟灑亭卽事)』에는 간접적인 기사가 있다.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소쇄원제초정(瀟灑園題草亭)』에는 자기가 태어나던 해(1536)에 소쇄원이 조영된 것이라 하였다.

    1542년에는 송순이 양산보의 소쇄원을 도왔다는 기록도 있다.
    소쇄원은 양산보 개인이 꾸몄다기보다는 당나라 이덕유(李德裕)가 경영하던 평천장(平泉莊)과

    이를 모방한 송순, 김인후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1574년 고경명(高敬命)이 쓴 『유서석록(遊瑞石錄)』에는 소쇄원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 있어 당시 소쇄원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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