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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慶州 東宮, 月池) - 사적 제18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6. 9. 3. 05:03
경주 동궁과 월지(慶州 東宮, 月池) - 사적 제18호
월지(月池) - 안압지(雁鴨池)
『삼국사기』에는 안압지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궁 안의 못'으로만 기록되었다.
1980년대‘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며,
본래 이름은 ‘달이 비치는 연못’이란 뜻의‘월지'라고 불렀다.
이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시인묵객들이 연못을 보며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고 그 때부터 기러기 '안'자와 오리 '압'자를 써서 ‘안압지’로 불리게 되었다.
안압지는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총 둘레 1000m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가장자리에 굴곡이 많아 어느 곳에서 보아도 연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신라인들의 세련된 창의성이 돋보이며,못 안에는 동양의 신선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섬 세 개와 열두 봉우리를 만들었고,
물을 끌어들이는 입수 장치나 배수구 시설 또한 교묘하고 세심하다.
경주 동궁과 월지(慶州 東宮, 月池) - 사적 제18호
이곳은 통일 신라 시대 궁궐터의 하나로, 임해전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들과 함께 태자(太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연회를 베푸는 장소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文武王) 14년(674)에 "궁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라는 기록이 있고 19년(679)에는 "동궁을 지었다".
경순왕(敬順王) 5년(931)에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위하여 임해전에서 잔치를 베풀었다"라는 등의 기록이 있어월지와 동궁의 축조 연대와 주요 건축물들의 성격을 알수 있다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 조사에서 신라 때 축조되었던 월지(月池)의 모습 대부분이 확인되었고,
동궁 건물터에서 출토된 기와와 보상화문전(寶相華紋塼)에 새겨진 기년명(紀年銘)을 통해
축조 연대가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월지는 조선시대에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안압지(雁鴨池)"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임해전은 신라 궁권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월지는 동궁의 원지(苑池)로서 신라 원지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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