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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전통사찰, 조계사(曹溪寺)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7. 2. 25. 05:25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전통사찰, 조계사(曹溪寺)
조계사 일주문(曹溪寺 一柱門)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통상적으로는 일주삼간(一柱三間)이라 하여 일렬로 세 개의 문을 갖는다.
이렇게 한 줄로 늘어놓은 이유는 일심(一心)을 상징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때 일심이란 사찰에 들어서기 전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오라는 뜻이다.
또한 세 개의 관문을 갖는 이유는 성문, 연각, 보살로 나뉜 불교의 여러 교법이
오직 성불을 지향하는 일불승의 길로 통한다는 『법화경』의 사상을 담고 있다.
통상 일주문에는 현판을 달아 사찰의 격을 나타내는데 조계사 일주문에는 <대한불교총본산 조계사>라는 현판을 걸어
조계사가 창건 당시 총본산 건설 운동의 일환으로 건축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조계사는 오랫동안 일주문이 없었으나 2005년 3월 조계사 중창불사 당시 일주문 건립 기공식을 갖고,2006년 10월 9일 현판과 주련을 달아 최종 완공하였다.
현판과 주련의 글씨는 당시 한국서예가협회장이었던 송천 정하건 선생이,
그리고 서각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인 철재 오옥진 선생이 조성하였다.
조계사(曹溪寺) 백송(白松)
조계사(曹溪寺)에 들어서면 마주 대하는 백송은 수령은 약 500년 이상 추정되며 높이 14m, 둘레 1.85m이다.
백송은 중국의 희귀수종이었는데, 종자이식이 어려워 우리나라에 그리 많지 않다.
생장이 느린 백송은 10년을 자라도 지름이 손가락 굵기 정도에 그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큰 나무는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백송은 어릴때는 연회색을 띄는데, 수령이 많아지면서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진다.
수령이 20년 정도 되면 청갈색이 나타나고 40년 정도 되면 청백색의 얼룩점이 생겼다가
점점 회백색으로 변해가기 때문에 백골송(白骨松)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조계사 백송은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라고 한다.
조계사가 창건되기 이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백송은 현재 대웅전 쪽으로 뻗은 가지만 살아있다.
조계사(曹溪寺) 백송(白松)은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9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조계사 천진불
조계사 천진불은 2006년 3월22일에 봉행되었다.
아기 부처님의 천진스러운 모습을 형상화한 천진불은 한국불교총본산인 조계사에서어린 불자들이 뛰어 놀며 부처님 법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길 기원하며 제작되었다.
조계사 대웅전(曹溪寺 大雄殿)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7호
대웅전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큰 영웅이 계신 곳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모든 것에 있어서 걸림이 없는 분, 대자유인, 스스로를 극복하고 능히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분,
하늘과 땅, 모든 존재로부터 마땅히 존경받는 분을 모신 곳 즉,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조계사의 경우처럼 좌우에 아미타부처님과 약사여래부처님이 봉안되어 있는 경우에는
대웅전이라는 명칭보다 더 격이 높은 대웅보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조계사는 창건 당시부터 석가모니부처님 한 분을 모셨기 때문에 대웅전이라고 불러져,
2006년 삼존불(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아미타부처님,
우측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이후에도 이전에 부르던 명칭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조계사 팔각십층석탑(曹溪寺 八角十層石塔)
조계사 진신사리탑은 1914년 스리랑카 달마바라 스님으로부터 진신사리를 기증받아 1930년 7층탑을 세우고 봉안했다.하지만 탑 양식이 일본풍인데다가 사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어 조계사 창건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월정사 석탑 등의 양식을 토대로 우리나라 전통적인 다각다층석탑의 양식으로 조성한 것이다.
팔정도(八正道)와 십선법(十善法)을 상징하는 8각 10층으로 새롭게 조성된 탑은높이 15m 66cm, 폭 6m로 기존 조계사 탑에 비해 약 3배 규모로,
진신사리탑 내부에는 부처님 사리 1과를 비롯해 소형불상 14290불을 모셨고,
1660년(조선 현종1) 은진 쌍계사각판 <법화경> 7권 1질과 25조가사 1벌을 함께 안치했다.
또 외부에는 8여래상, 8신중상 등을 부조로 장엄함으로써 한국불교의 중심이 될 사리탑으로서 위엄을 갖췄다.
조계사 범종루(曹溪寺 梵鐘樓)
법고, 운판, 목어, 범종 등의 사물이 있는 곳이다.
매일 새벽 예불(오전 4시경)과 저녁 예불(저녁 6시경) 그리고 특별한 행사 때 치게 된다.
사물을 치는 순서는 법고(法鼓) → 범종(梵鐘) → 목어(木魚) → 운판(雲板)이다.
이 중, 법고는 땅에 사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운판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매며 떠도는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목어는 물속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범종은 욕계의 6천과 색계의 18천과 무색계의 4천을 제도하기 위해 울린다.
범종은 새벽 예불 때 28번 저녁 예불 때 33번을 치는데
이는 새벽에 28개의 지옥문을 열어 사시에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저녁에 33개의 천상의 문을 열어 모두 극락으로 인도하는 의미에서 조석으로 울리고 있는 것이다.
조계사 극락전(曹溪寺 極樂殿)
대웅전을 바라보고 왼편에 자리 잡고 있는 2층짜리 건물이 극락전이다.
극락전의 내부 중심에는 아미타부처님이, 좌우에는 각각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그 좌우 측면으로 십대명왕이 자리하고 있다.
아미타부처님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십 만 억 국토를 지난 극락정토라는 곳에 계신 부처님이다.극락이란 모든 중생을 청정하고 완전하게 하는 곳이다. 때문에 이곳에서 주로 제사와 영가천도 의식이 봉행되고 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전통사찰, 조계사(曹溪寺)
조계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총본산으로
대중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대승의 보살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또한 한국근현대사의 격동기를 우리 민족과 함께한 역사의 현장으로,특히 암울한 일제치하 시대를 극복해 낸 민족자존의 공간이라 할 것이다.
조계사는 일제치하인 1910년, 조선불교의 자주화와 민족자존 회복을 염원하는 스님들에 의해 각황사란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당시 각황사는 근대 한국불교의 총본산으로 근대 한국불교 최초의 포교당,
일제하 최초의 포교당이었으며 4대문 안에 최초로 자리 잡은 사찰이었다.
1937년 각황사를 현재의 조계사로 옮기는 공사를 시작,
이듬해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太古寺)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하여 절 이름을 태고사로 했다.
태고사를 창건하면서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은 정읍에 있었던 보천교(普天敎) 십일전(十一殿)을 이전하여 개축하였으며,
1938년 10월 25일 총본산 대웅전 건물의 준공 봉불식을 거행했다.
1954년 일제의 잔재를 몰아내려는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난 후 조계사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한국불교와 그 대표종파인 조계종의 주요 사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조계사는 국제 문화도시인 서울의 도심인 종로 한가운데에 위치한 유일한 전통 사찰로서, 휴식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최근 대웅전 중수, 일주문 건립 등 중창불사를 통해 총본산으로서 위상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어나감으로써,
수행과 신행활동 그리고 역사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24시간 경내 개방을 통해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혹은 불자든 아니든 간에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들를 수 있으며,
불교 관련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마련하였다.
조계종의 ‘조계(曹溪)’라는 명칭은 초조 보리달마로부터 시작된
선종(禪宗)을 확립시킨 육조혜능(六祖慧能)대사의 법호에서 유래한다.
조계는 원래 중국 광동의 지역 이름이지만, 조계산 보림사를 중심으로 하는
혜능대사의 영향으로 선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5(견지동)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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