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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령왕릉(武寧王陵) - 사적 제13호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8. 10. 29. 04:30

    무령왕릉(武寧王陵) - 사적 제13호




    무령왕(武寧王, 462~523)


    501년 동성왕의 뒤를 이어 무령왕이 즉위하였다. 그의 나이 40.

    늦은 나이였지만 즉위 직후 반란 세력을 진압하며 혼란했던 정국을 수습하고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 통제력을 강화하였다.

    수리시설을 확충하고 농업을 발전시켜 경제를 든든히 하는 한편 대외적으로 고구려와의 전쟁을 지속해 한강 일부를 수복하였다.

    강대국이었던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영동대장군의 작호를 받았고, 이웃한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백제는 무령왕의 강력한 통치를 바탕으로 왕권국가를 재건하는데 성공하며

    스스로 '여러 차례 고구려를 격파하고 다시 강국이 되었다(累破高句麗 更爲强國, 누파고구려 경위강국)'라고 선언하였다.






    살아있는 무령왕릉(武寧王陵)



    무령왕릉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가장 놀라며 주목한 것은 무덤 앞에 놓여 있던 지석(誌石)이었다.

    2매의 지석은 삼국시대의 여러 왕릉급 고분 가운데 유일하게 발견된 것으로, 무덤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왕의 지석에는 묘지와 방위도가, 왕비의 지석에는 묘지와 매지문(買地文)이 새겨져 있다.

    지석의 내용은 왕과 왕비가 세상을 뜬 날짜와 장례 절차에 관한 것이며,

    왕비의 지석에 쓰여진 매지권은 땅의 신들에게 묘를 조성할 토지를 사들인다는 내용이다.











    무령왕과 무령왕릉 발견의 의의


    백제 25 왕인 무령왕(武寧王)즉위하자마자

    동성왕을 시해한 백가(苩加)의 반란을 진압하여 목을 백강에 버리고, 혼란한 정국을 수습했다.

    또한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 지배를 강화하는 등 왕권 강화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정치를 안정궤도에 올려놓았다.

    무령왕은 대외교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고구려의 압박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다.

    중국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선진문물을 과감하게 수입함과 동시에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서 국가의 대외적 발전을 꾀했다.

    이렇듯 백제는 무령왕의 뛰어난 통치력을 바탕으로 고대 동아시아에서 그 위상을 높이는데 성공한다.

    사실 백제의 역사와 문화는 무령왕릉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71년 무령왕릉의 발견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무령왕릉은 왕릉 자체가 갖는 가치뿐만 아니라

    그 안에 부장되어 있던 4,600여 점의 다양한 유물들 하나하나가 백제의 정신이자 세련된 백제 문화의 진수 그 자체였다.

    이 가운데 매우 정교하고 화려한 금속 공예품은 높은 품격과 고도의 제작기술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당시 백제 장인들의 예술적 감각과 금속을 다루는 기술수준이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출토유물인 묘지석을 통해 무령왕이라는 것과 연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에,

    한국고대사 나아가 동아시아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술하는데 유용한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당시 동아시아 및 삼국관계에서 차지하는 백제의 위치를 이해하는데도 매우 중요한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무령왕릉(武寧王陵)


    백제 제25대 무령왕(재위:501~523)과 왕비의 합장 무덤이다.

    19715호분과 6호분 배수로 작업을 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무덤은 중국 남조에서 유행하던 벽돌무덤(塼築墳, 전축분), 널방은 연꽃무늬를 새긴 벽돌로 쌓았다.

    벽면에는 등잔을 올려 놓았던 등감(燈龕)과 창문시설을 설치하였으며, 남북 길이 4.2m, 동서 너비 2.72m, 높이 2.93m이다.

    널굴의 입구에서 출토된 지석(誌石)은 무덤의 주인공과 무덤을 만든 연대를 말해주고 있다.

    송산리고분군에 있는 무덤 중에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것으로,

    무령왕과 왕비의 금제 관장식을 비롯하여 총 1084,600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였다.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산5-1 공주 송산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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