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덕궁수리도감의궤(昌德宮修理都監儀軌)와 창경궁영건도감의궤(昌慶宮營建都監儀軌)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8. 12. 1. 22:43
창덕궁수리도감의궤(昌德宮修理都監儀軌)와
창경궁영건도감의궤(昌慶宮營建都監儀軌)
창덕궁수리도감의궤(昌德宮修理都監儀軌) - 보물 제1901-3호
인조반정 때 소실된 창덕궁의 중건을 기록한 의궤이다.
창덕궁은 1405년(태종 5)에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궁궐 중 가장 먼저 재건되어 조선후기에는 정궁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1623년 일어난 인조반정 때에 인정전을 제외한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다가 25년만인
1647년(인조 25) 중건공사가 완료되어 그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한양도성의 궁궐은 전란 때 소실된 후 재건 혹은 수리되면서 이러한 연건의궤를 남겼다.
창경궁영건도감의궤(昌慶宮營建都監儀軌) - 보믈 제1901-2호
1830년(순조 30) 창경궁 내 환경전(歡慶殿)의 화재로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다.
정조가 태어난 경춘전(景春殿)을 비롯하여 양화당(養和堂) 등의 전각을 중건한 내용을 기록한 의궤이다.
창경궁은 원래 수강궁(壽康宮)으로 1418년(세종 원년) 왕위에 오른 세종이 부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이궁이었다.
이를 1484년(성종 15) 확장공사하여 궁궐다운 규모를 갖추고 아름도 창경궁으로 하여
창덕궁의 부족한 기능을 보완하는 궁궐로써 자리잡게 되었다.
도성의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때 소실되었고,
이후 크고 작은 화재와 수리가 이어지다가 1833년(순조 33) 마침내 대대적인 재건 공사가 이루어졌다.
현재 남아있는 전각은 대부분 이때 세워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을 짓고 수리하는 일을 각별히 여겼다.
조선왕조는 궁궐을 짓는 일을 ‘영건’(營建)이라 명해 궁궐의 건축과 수리를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국내 나들이 > 문화재(文化財)를 찾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성 홍주읍성 홍주아문(洪城 洪州邑城 洪州衙門) - 사적 제231호 (0) 2018.12.07 홍주성지순례길, 홍성 홍주읍성 조양문과 홍주진영터 (0) 2018.12.06 동락서원 강당(東洛書院 講堂)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호 (0) 2018.11.27 서울 (구)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 - 등록문화재 제363호 (0) 2018.11.19 박정희 대통령 생가(朴正熙 大統領 生家) - 경상북도기념물 제86호 (0) 2018.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