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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 산불됴심 표석(鳥嶺 산불조심 標石) 표석의 설치 연대는 대체적으로 조선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추형 화강암 자연석에 음각된 순수 한글비석이다. 현재 문화재 위치는 처음 세워질 당시의 장소로 보여지며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산불예방과 주흘산(主屹山)의 자연..
문경새재 주막(酒幕) 새재(鳥嶺)는 조선시대에 영남에서 한양으로 오가던 가장 큰 길로서, 이 주막은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 길로 오르던 선비들, 거부의 꿈을 안고 전국을 누비던 상인들 등 여러 계층의 우리의 선조들이 험준한 새재길을 오르다 피로에 지친몸을 한 잔의 술로써 여독을 ..
영남제2관(嶺南第二關), 조곡관(鳥谷關) - 사적 제147호 이 관문은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문경 조령(聞慶 鳥嶺)의 중간에 위치한 제2관문으로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축성 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조선(朝鮮) 선조(宣組) 25년(1592) 왜란(倭亂)이 일어난 후..
조령원터(鳥嶺院址) 주흘산 조령관문 1관문(주흘관)과 2관문(조곡관) 사이에 위치한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을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문경새재는 과거 한양과 영남을 이어주는 길목에 위치하여 수많은 길손들이 오고가는 중요한 통..
문경새재 과거길 - 새재(鳥嶺)를 노래한 시(詩) 조령(鳥嶺, 새재)의 유래 백두대간의 조령산과 마패봉 사이를 넘는 이 고개는 옛 문헌에는 초점(草岾)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어원은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에서 유래..
영남 제2관문 조곡관(嶺南 第二關門 鳥谷關) - 사적 제147호 이 관문은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문경 조령(聞慶 鳥嶺)의 중간에 위치한 제2관문으로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축성 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조선(朝鮮) 선조(宣組) 25년(1592) 倭亂(왜란)이 일어..
어사또가 쉬어간 자리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고사리마을 입구에는 ‘어사또가 쉬어간 자리’ 표석과 ‘신혜원 마을유래비’가 있고, 그 앞으로 일명 ‘박문수 소나무’라 불리는 350년 된 소나무(보호수, 1982년 11월 16일 지정)가 있다. 신혜원(新惠院)은 서울에서 경상도로 이어지는 ..
문경 조령관문(聞慶 鳥嶺關門) 수 많은 전설과 애환이 서린 조령관문(鳥嶺關門)은 영남지방과 서울간의 관문이자 군사적 요새지(要塞地)이다. 이곳은 고려 초부터 조령(鳥嶺, 새재)이라 불리면서 중요한 교통로로 자리잡았다. 조선 선조(宣祖) 2년(1592년)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