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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江華島) 갑곶돈대(甲串墩臺)- 사적 제306호 갑곶돈대는 초지진, 광성보 처럼 요새라는 명칭을 받지 못하고 단지 '돈대(墩臺)'라는 명칭으로 남아있다. 돈대라는 것은 경사면을 절토(切土)하거나 성토(盛土)하여 얻어진 계단 모양의 평탄지를 옹벽(擁壁)으로 받친 부분을 말하는데, ..
강화 갑곶리(江華 甲串里)의 탱자나무 강화도(江華島)는 몽고군이 침공하였을 때 고려의 고종(高宗)께서 28년간 강화에서 정무(政務)를 살피셨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조선조(朝鮮朝) 인조(仁祖, 재위 1623~1649)의 가족이 강화도에서 전란을 피했던 장소이다. 이러한 전란(戰亂)을 계기로..
임경업장군 비각(林慶業將軍 碑閣) 낙안읍성 내의 객사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가에 있는 한 채의 비각과 그 안에 서 있는 비로, 임경업 장군의 선정을 기리고 있다. 임경업(1594∼1646)은 조선시대 중기의 명장으로, 인조 4년(1626) 이곳 전라도 낙안지역의 군수로 부임해왔다. 인조 6년(1628) 3월 ..
덕수궁(德壽宮)의 즉조당(卽阼堂)과 준명당(浚眀堂) 덕수궁(德壽宮)은 원래 궁궐이 아니었다. 성종(成宗)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집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왕궁이 모두 불타고 남아 있는 건물 중에서 가장 쓸만한 건물이었던 건물을 임시로 왕궁으로 쓰면서 역사에 등장했다...
치욕의 현장 "삼전도비(三田渡碑)" 이 비는 병자호란 때 승리한 청나라 태종(太宗)의 요구로 세운 비석이다. 원래의 비명은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이지만 문화재 지정 당시 지명을 따서 삼전도비(三田渡碑)라 지었다. 1639년(인조 17) 청나라의 강요에 따라 이조판서 이경..
동래 독진대아문(東萊 獨鎭大衙門)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서 부산의 금강공원 정문을 들어서 왼쪽으로 올라가는 산책길을 가다보면 자연석으로 만들어 놓은 층계가 있는데 그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본디 동래부 청산의 동현 앞대문으로서 망미루 뒤쪽에 있던 것을 일제 때 금강공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