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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도성 창의문(彰義門) - 사적 제10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9. 3. 26. 04:30
서울 한양도성 창의문(彰義門) - 사적 제10호
서울 한양도성 창의문(彰義門) - 사적 제10호
서울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四大門), 그 사이에 4소문(四小門)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北小門)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으로 불린 적은 없었고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려 왔다.
태종 13년(1413)에는 풍수학자 최양선(崔揚善)이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으므로 길을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건의한 것을 받아들여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세종 4년(1422)에는 군인들의 출입 통로로 이용할 수 있게 했고,
광해군 9년(1617)에는 궁궐 보수 작업 때 석재의 운반을 위하여 열어주도록 하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당시에도 길 자체는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창의문이 서울성곽의 문루로서 제구실을 하게 되는 것은 영조 17년(1741) 이곳을 수축할 때였다.
당시 훈련대장 구성임(具星任)이 “창의문은 인조반정(1623년) 때 의군(義軍)이 진입한 곳이니
성문을 개수하면서 문루를 건축함이 좋을 것”이라고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져 비로소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956년 창의문 보수 공사 때 천장 부재에서 묵서로 된 기록으로 확인되었고,
지금 창의문에는 인조반정 때 공신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현판이 걸려 있다.
창의문의 형태는 전형적인 성곽 문루의 모습으로, 서울의 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수백 년간 사람의 발길에 길들여진 박석이 윤기를 발하고 있다.
특히 빗물이 잘 흘러내리도록 문루 바깥쪽으로 설치된 한 쌍의 누혈(漏穴) 장식은
연잎 모양으로 맵시 있게 조각되어 이 성문의 건축 단장에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성문의 무지개 모양 월단(月團) 맨 위에는 봉황 한 쌍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데,
속설에 의하면 이는 닭 모양을 그린 것으로 창의문 밖 지형이 지네처럼 생겼으므로
지네의 천적인 닭을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 118 (청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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