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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리산성지 고택성당(최경환성인 고택)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9. 5. 18. 22:30

    천주교 수리산성지 고택성당(최경환성인 고택)


    수리산성지 순례자성당에서 조금 올라가면 오른편에 황토로 꾸며진 성당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우라나라 두번째 한국인 신부 최양업(崔良業, 토마스)의 부친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 1804~1839) 성인과

    모친 이성례(李聖禮, 마리아, 1801~1840) 의 고택으로

    내부에는 약300명 정도 함께 미사와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2층 구조로 꾸며져 있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병목안로 408  천주교 수리산성지
















    십자가의 길(14처)







    수원교구 도보성지순례길(수리산성지)





    수리산성지 미사시간 매일 11시(월요일 제외)






    최경환 성인의 생애와 신앙생활


    1804년 충청도 홍주의 다래골(현 다락골)에서 최인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남

    1820년 이성례 마리아와 혼인

    1827년 충청도 홍주 다락골에서 서울 벙거지골로 이주

    1830년 서울 벙거지골에서 강원도 김성으로 이주

    1836년 강원도 김성에서 부평 접푸리로 이주

    1838년 부평 접푸리에서 과천 수리산으로 이주

    1839년 수리산 교우촌 회장으로 임명(모방 신부)

    18397월 서울 포도청으로 압송

    1839912일 순교(36)

    1925725일 시복(교황 비오 11)

    198456일 시성(교황 요한바오로 2)


    성인 최경환 프란치스코는 충청도 홍주 다래골(현 다락골) 출신으로 치운이라고도 불렸다.

    그의 집안은 일찍부터 천주교를 받아들였는데, 최경환 프란치스코도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교리를 배워 천주교인의 본분을 지켰다.

    그는 원래 성질이 괄괄해서 불같이 일어나는 분노를 억제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

    신앙의 힘으로 많은 노력을 한 결과 사람들은 그가 본래 성질이 온순한 사람인줄 알았다고 한다

     최씨 가문은 부유했지만 신앙적으로는 충실하지 못했으므로, 최경환 프란치스코는 영혼을 구하기 위해

    고향과 재물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자고 형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형들이 듣지 않자, 어느 날 그는 하직 편지만 남겨 놓은 채 집을 나가버렸다.

    그 편지를 읽은 형들은 매우 놀라 곧 집안사람을 보내 돌아오도록 간청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더욱 열심히 형들을 설득하여 마침내 가족과 함께 고향 다락골을 떠날 수 있었다.

    그의 가족은 서울 벙거지골이라는 곳으로 이사했으나 곧 많은 재산을 잃고 신자 신분이 드러나 위험하게 되었다.

    최경황 프란치스코는 가족을 데리고 산속 교우촌을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했는데,

    강원도 김성(혹은 금성), 부평의 접푸리 등을 거쳐 마지막에는 수리산 뒤뜸이에 정착했다.

    최경환 프란치스코는 자기의 본분을 지키며 종교서적을 자주 읽고 가난 중에도 자기의 것을 남에게 베풀어주니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여 그의 권고를 즐겨 듣고 천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멀리서도 찾아오곤 하였다.

    이러한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신앙과 모범적 행실이 널리 알려지자 선교사는 그를 수리산 교우촌 회장으로 임명했다.





    이성례 마리아 복자의 생애와 신앙생활


    1801년 충청도 홍주에서 경주이씨 집안의 46녀중 막내로 태어남

    1820년 최경환과 혼인(18)

    182131일 첫째아들 최양업 출산 - 충청도 홍주 거주시기

    1827년 둘째아들 최희정 야고보 출산 - 충청도 홍주에서 서울 벙거지골 이주시기

    1830년 셋째아들 최선정 안드레아 출산 - 서울에서 강원도 김성 이주시기

    1832년 넷째아들 최우정 바실리오 출산 - 강원도 김성 거주시기

    1834년 다섯째아들 최신정 델레신포르 출산 - 강원도 김성 거주시기

    1839년 여섯째아들 스테파노 출산 - 수리산 뒤뜸이골 거주시기

    1839년 어린 자식들과 함게 서울로 압송

    1840131일 당고개에서 참수형(40)

    2014년 시복(교황 프란치스코)


    이성례(李聖禮) 마리아(Maria)는 충청도 홍주 출신으로 내포 지역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 집안 사람으로

    46녀중 막내로 태어난 이성례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남성처럼 씩씩한 정신을 지녔으며,

    18세 때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과 혼인하여 홍주 다래골(현 다락골)에서 살면서 1821년에 맏아들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낳았다.

    이성례 마리아는 집안일을 지혜롭게 꾸려 나갔고,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남편에게 순종하면서 화목하게 살았다.

    천주교 신앙을 위해 고향과 재산을 모두 버리고 극도의 궁핍과 긂주림 가운데

    험한 산속으로 방황하기를 수년을 거듭하였는데도 이 모든 것을 기쁘게 참아 받았다.

    남편인 최경환 프란치스코를 따라 먼 곳으로 이사 갈 때나 먼 길을 걸을 때,

    어린 자식들이 굶주림에 지쳐 칭얼거리면, 요셉과 성모 마리아가 이집트로 피난 가던 이야기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식들에게 인내심을 키워 주었다.

    가난 중에도 사순시기 때면 금육과 금식으로 모은 양식을 남편과 의논하여 가난한 신지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수리산에 정착한 뒤로는 회장인 남편을 도와 그 마을을 교우촌으로 일구는 데 노력하였다.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이성례 마리아는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서 거룩한 가정을 일구었으며

    큰아들을 신학생으로 보내 사제로 키워냈다.

    또한 신앙공동체 안에서도 궂은일을 도맡으며 이웃을 돌보고 복음을 전파하는데 함께 힘썼다.




    수리산성지 발자취 - 성지 성역화의 역사


    수리산성지의 변모

    1883년말(개항)-1884년초 : 안양 신앙공동체의 중심지

    1895년 수리산 교세 정점 / 1900년이후 감소 / 1910년이후 부진

    1930년대 교세회복, 안양읍에 새로운 공소 설립

    1937년이후 안양읍 공소의 교세가 수리산 공소 추월

    195497일 안양본당(현 중앙성당) 설정


    최경환 유해의 발굴과 수습

    1928618일과 912일 묘지 확인

    1930525일 복자 최경환의 유해발굴 수습

    1930923일 유해조사 / 929일 명동대성당 지하묘소 안치

    1984년 절두산 순교자기념관으로 이송


    수리산성지 조성과정

    1965912일 순교기념비 건립

    1984415일 시성기념 순교기념비 건립 / 56일 성인 시성

    1987415일 십자가의 길 14처 및 제단설치

    1988104일 수리산공소 강당부지 매입

    19918월 성지순례자를 위한 야외 미사터 완료

    1998112일 수리산공소 건물 철거 / 성지 건축허가 취득

    1999104일 순례자성당 신축공사 착공

    2012611일 성지땅 310평 구입

    수리산성지 설정과 현양사업

    2000125일 성지로 선포 / 516일 성지성당 건축 완료

    2001912일 현양미사 / 성인동상 제막 및 축복식

    20031227~28일 이성례 마리아 순교자 소재로 성극공연

    200558일 성인탄생 200주년 기념 산상음악제 / 경축행사

    200664일 고택성당 완공 / 첫미사

    2008920일 유해(손뼈 5) 안치/ 순교자(7) 현양비 제막

    2009113일 최경환성인과 수리산성지에 관한 학술대회 개최

    2010912~16일 오페라 세인트 최경환(5회 공연)





    바뇌(Banneux)의 성모


    1933115일부터 32일 사이에 성모마리아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로

    벨기에의 고원지대에 있는 산골마을 바뇌에서 마리에뜨(Mariette, 당시 12)에게 8번 발현하셨다.

    오늘날 물질주의의 삶으로 인해 상실된 신앙의 회복을 위해 성모님은 가난과 기도의 삶을 말씀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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