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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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월영대(月映臺)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28. 21:11
移轉 重修碑(이전 중수비) 문화재명 : 月映臺 지정종별 : 경북지방 유형 제22호 원위치 : 안동군 임동면 사월동 이전 연월일 : 서기 1976년 6월 2일 이전사유 : 본 문화재는 안동댐 건설에 의하여 수몰되므로 이를 안전하게 보존키 위해 이전 중수하였음 시공자 : 삼부토건 주식회사 시공청 : 안동군 월영교(月映橋)와 월영정(月映亭) 이 다리는 바닥과 난간을 목재로 만든 인도교로써 폭 3.6m, 길이 387m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이다. 다리 이름은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여 출품한 응모작 322점 중에서 '월영교'를 선정하였으며, 유난히 달(月)과 연관이 많은 이 지역의 유래에서 착안되었다. 이곳 안동댐 유역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명칭이 '달골'이었으며 다리를 건너면 바로 '엄달골' 마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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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서울 선잠단지(先蠶壇址)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25. 21:11
先蠶壇址(선잠단지) 선잠제(先蠶祭)에서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모습 모형으로 연출된 장면은 선잠제에서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초헌례(初獻禮)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정1품 초헌관이 자리로 나오면 등가(登歌)에서 수안지악(壽安之樂)을 연주하고 문무(文舞)가 춤을 춘다. 초헌관이 술을 올리고 무릎을 꿇고 앉으면 대축이 축문을 읽는다. 축문을 다 읽고 나면 초헌관이 자리로 돌아온다. 이후 문무(文舞)가 물러가고 문무가 나와 춤을 추며 헌가(軒歌)에서 서안지악(舒安之樂)을 연주한다. 3월 선잠제에서 제사를 지내다. 선잠제는 늦봄 음력 3월의 상서로운 뱀날(吉巳)에 지내는데 음력 3월은 뽕잎이 나기 시작하므로 잠월(蠶月)이라고도 한다. 관상감(觀象監)에서 날짜를 정하면 예조(禮曹)에서 의례 준비를 하였다. 선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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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숙 초가 겹집(朴原淑 草家) - 안동시 문화유산 제83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23. 23:10
박원숙 초가 겹집(朴原淑 草家) - 안동시 문화유산 제83호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농가로 안동시 와룡면(臥龍面) 가류동(加流洞)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1976년에 옮겨 왔다. 본채와 대문채, 고방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채를 중심으로 두 채가 ‘ㄷ’ 자로 배치되어 있다. 본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겹집으로 사랑방, 부엌, 마루방, 방, 안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문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규모로 방 – 대문간 – 외양간 – 광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고방채는 2칸 건물로 한 칸은 고방으로 사용하고, 다른 한 칸은 벽체 없이 빈 공간으로 두었다. 온돌 중심형 겹집에서 약간 변형된 형태로 외양간이 있어야 할 자리가 사랑방으로 변하고, 뒤쪽 안방이 확장된 점이 특징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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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당지(春塘池)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22. 19:10
춘당지(春塘池) 춘당지(春塘池)는 창경궁(昌慶宮) 후원(後苑)에 있는 호리병 모양의 연못으로 대춘당지는 1909년에 내농포(內農圃) 속한 11개의 논을 하나로 만든 것이다. 윗 연못이 1,107㎡, 아래 연못이 6,483㎡이다. 연못 속의 섬(366㎡)은 1984년에 조성한 것이다. 내농포는 임금과 왕비가 각기 농사와 양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궁궐 안에 둔 논과 뽕밭이다. 춘당지가 있는 이곳은 원래 연산군(燕山君)이 서총대(瑞蔥臺) 앞 대지를 파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중단한 곳이다. 그 후 권농장(勸農場)의 논이 있었는데 연못으로 만들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창경궁 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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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원 병동 터(大韓醫院 病棟 址)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20. 20:11
대한의원 병동 터(大韓醫院 病棟 址) 대한의원 병동은 감염 문제를 고려한 파빌리온 형태로 축조된 건물로서 본관 배후에서 환자 수용 역할을 하던 곳이다. 병동 구역에는 2등 병실로 구성된 병동 4개 동과 3등 병실로 구성된 병동 2개 동이 있었으며, 모두 2개의 회랑으로 본관과 연결되었다. 2등 병실은 6~8인실, 3등 병실은 16인실로 계획되었다. 각 병동은 벽돌로 벽체를 쌓은 단층 건물로 축조하였으며, 지면과 건물 바닥 사이에 공간을 두고 띄워 통풍 및 방습, 방충 기능을 하도록 하였다. 건물 축조에 사용된 벽돌은 대한제국 탁지부 건축소 산하의 연와 제조소(煉瓦製造所)에서 제작된 벽돌을 사용하였다. 벽체 하부에는 깬 돌과 콘크리트를 소재로 줄기초를 마련하여 기초를 조성하였다. 건립 당시 본관을 제외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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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태실(成宗 胎室) 및 태실비(胎室碑)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19. 19:12
성종 태실은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석종형(石鍾形)의 몸체를 놓고 팔각형의 지붕돌을 얹었으며 상륜부(相輪部)는 보주(寶珠)로 장식하였다. 태실비는 태실 동쪽에 있는데 귀부(龜趺)와 비신(碑身), 이수(螭首)를 갖추고 있고 비신 앞면에는 "성종대왕태실(成宗大王胎室)"이라 새겨져 있다. 成化 七年 閏 九月 日立 - 성화 7년(1471년, 성종 2년) 윤 9월 어느 날 세움 萬曆 六年 五月 日 改立 - 만력 6년(1578년, 선조 11년) 5월 어느 날 고쳐 세움 順治 九年 十月 日 改立 - 순치 9년(1652년, 효종 3년) 10월 어느 날 고쳐 세움 道光 三年 五月 日 改立 - 도광 3년(1823년, 순조 23년) 5월 어느 날 고쳐 세움 성종 태실비는 1471년에 세운 후 3차례 고쳐 세웠다. ※ 성화(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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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헌(迎春軒)과 집복헌(集福軒)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18. 20:13
영춘헌은 본채 5칸이 남향하여 ㅡ자형을 이루고 본채의 좌우와 뒷면으로는 행각이 둘러져 있어 ㅁ자형을 이루었으며 서쪽으로 ㅁ자형의 행각이 이어져 맞붙어 있다. 놋상 및 주전자 – 유기장 보유자 이형근 작 만자문 촛대 – 유기장 보유자 이형근 작 주칠 원형 소반 – 칠장 박강용, 소목 이건무 작 백자 그릇 – 공예작가 김윤지 누비 방석 – 공예작가 정숙희 작 아트디렉터 – 김주일 복자발 – 염장 보유자 조대용 작 나주반 – 소반장 보유자 김춘식 함 – 칠장 이수자 권영진 작 화문석 – 공예작가 박윤환 작 영춘헌(迎春軒)과 집복헌(集福軒) 이 일대는 생활공간이 밀집된 영역이었다. 집복헌은 후궁의 생활공간이었다. 현재 집복헌은 마치 영춘헌의 서쪽 행각처럼 붙어 있으나 원래는 두 집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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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풍기대(風旗臺)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17. 21:13
보물, 풍기대(風旗臺) 창경궁 영춘헌과 집복헌 뒤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풍기대는 대(臺) 위에 구멍을 뚫어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했던 기상 관측기구이다. 1770년(영조 46)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탁자 모양의 돌 위에 긴 팔각기둥을 세우고 넝쿨무늬를 정교하게 새겼다. 원래 창덕궁 통제문 안에 설치하였다가 해방 전 이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풍기대는 높이 228.1cm이며, 하부 대석은 높이 92.4cm이고, 넓이는 가로·세로 모두 62cm이다. 상부 팔각기둥은 높이가 135.7cm, 상부 구멍 지름은 11cm, 깊이가 33cm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창경궁 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