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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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의 장용외영 표석(壯勇外營 標石)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8. 26. 04:13
수원화성의 장용외영 표석(壯勇外營 標石) 수원화성을 답사하다보면 성벽에서 펄럭이는 깃발과 중간중간에 서있는 표석을 볼 수 있다. 깃발은 방위에 따라 팔달문 주변 남쪽 구간은 붉은색, 장안문 주변 북쪽 구간은 검은색, 창룡문 주변 동쪽 구간은 파란색, 화서문 주변 서쪽 구간은 흰색이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방향에 따라 오방색 깃발을 배치했다. 깃발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화성전도 6폭 병풍과 12폭 병풍 등 그림 속에는 4대문과 4개의 각루에 깃발을 그렸다. 화성전도 6폭 병풍의 그림이 12폭 병풍보다 정밀한데 4대문은 방향에 따라 오방색에 맞춰 깃발을 세웠고 각루에도 방향에 따라 깃발을 세웠다. 각루에 세운 깃발을 각기(角旗)라 하고 하나의 깃발에 두 색을 사용했는데 동북각루의 경우 깃발의 위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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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팔달문(八達門) - 보물 제402호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8. 19. 04:57
수원 팔달문(八達門) - 보물 제402호 팔달문은 수원 화성의 남문이다. 정조는 팔달(八達)의 의미를 ‘산 이름이 팔달이어서 문도 팔달이며, 사방팔방에서 배와 수레가 모인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팔달문 주변은 삼남 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화성 축성 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장안문과 마찬가지로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甕城)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규모와 형식은 장안문과 같다. 1794년 2월 28일 장안문과 같은 날에 터 닦는 일을 시작했지만 대체로 장안문보다 공정별로 약 1주일 늦게 완성하였다. 강원도 출신 목수 윤사범이 다포(多包)를 짜 맞추는 일을 담당했는데, 이 목수는 훗날 창덕궁 인정전을 짓는 공사를 담당해 근 100년 만에 화성에서 재현했던 다포 건축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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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수원화성(곽재용 기증 사진전) - 수원박물관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8. 15. 19:43
곽재용 기증 사진전, 한국전쟁과 수원화성 2020. 6. 25 ~ 8. 23 수원박물관 기획전시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창룡대로 265 (이의동) 수원박물관 031-228-4150 수원박물관 홈페이지 http://swmuseum.suwon.go.kr/ 전시개요(한국전쟁과 수원화성) 202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0주년 되는 해다. 1945년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이념의 대립으로 나뉜 남과 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의 포화에 휩싸였다. 남과 북은 서로 총칼을 겨누었고, 전쟁은 이 땅을 폐허로 만들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가족들은 흩어져 이산가족의 아픔이 남았다. 수원은 전쟁 기간 동안 수원화성의 장안문과 창룡문 등이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삶의 터전을 잃은 피란민들의 안식처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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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홍문의 비단결 폭포수 - 화홍관창(華虹觀漲)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8. 13. 04:27
사상 최대의 장마기간과 연일 계속되는 호우로 화홍문 칠간수에도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 화홍문의 비단결 폭포수 - 화홍관창(華虹觀漲) 광교산(光敎山) 깊은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수원천(水原川) 맑은 물은 화홍문(華虹門) 일곱수문(七間水門)의 폭포수가 되어 무지개 빛으로 부서져 내린다. 또한 흰 비단결 같은 물안개를 일으키며 창일(漲溢)하여 흘러 내리는 수원천의 일곱 물줄기는 수송(川邊)의 수양버들과 더불어 절경(絶景)이 되었으나 지금은 크게 오염되어 옛 모습이 안타깝다. 화홍관창은 수원8경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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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화전설 조선명승기행(史話傳說 朝鮮名勝紀行)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8. 8. 21:03
수원 신풍루(水原 新豐樓) 수원 화서문(水原 華西門) 경기도 수원 화서문(京畿道 水原 華西門) 수원 장안문(水原 長安門) 수원 화성장대(水原 華城將臺) - 일명 서장대(一名 西將臺) 수원 항미정 서호(水原 杭眉亭 西湖) 사화전설 조선명승기행(史話傳說 朝鮮名勝紀行) 발행연도 : 1929년 (株)博文館 발행 크기 : 10.5*17 면수 : 466쪽 전국 명승지에 대한 일종의 안내서로, 1929년 곤도 도키지(近藤時司)에 의해 저술되었다. 그는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수로 있으며, 한국의 민속, 문화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했다. 서문에서는 “조선에 온 지 10년을 맞아, 조선 각도의 명소·유적(舊蹟)을 답사하며 그에 얽힌 역사이야기(史話)와 전설을 수집했다”며 집필 배경을 밝히고 있는데, 직접적인 계기는 고향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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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먹은 병을 치료하는데 복용하는 환약(丸藥)”, 척서단(滌暑丹)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8. 8. 04:50
거중기 화성성역의궤 “더위 먹은 병을 치료하는데 복용하는 환약(丸藥)”, 척서단(滌暑丹) 정조실록(正祖實錄) 40권, 정조 18년(1794년) 6월 28일 癸未 4번째기사 1794년 청 건륭(乾隆) 59년 더위를 씻어주는 척서단(滌暑丹) 4천 정을 수원성(水原城=華城) 쌓는 곳에 내려주다. 새로운 처방의 척서단(滌暑丹) 4천 정(錠)을 화성(華城)의 역소(役所)에 내려주고, 전교하기를, "불볕 더위가 이 같은데 성역처(城役處)에서 공역을 감독하고 공역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끙끙대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니, 밤낮으로 떠오르는 일념을 잠시도 놓을 수 없다. 이러한데 어떻게 밥맛이 달고 잠자리가 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속이 타는 자의 가슴을 축여 주고 더위먹은 자의 열을 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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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미복원시설 ‘남지터(南池址)’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8. 5. 19:46
한글본 정리의궤의 남은구(南隱溝)와 남지(南池 : 위 하남지, 하 상남지), 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 남창교 표석(南昌橋 標石) 수원화성 미복원시설 ‘남지터(南池址)’ 수원화성 축성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794년 봄, 성안에서는 물길과 연못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남쪽에 상남지(上南池)와 하남지(下南池), 동쪽에 상동지(上東池)와 하동지(下東池), 북쪽에 북지(北池)를 만들어 성안에는 모두 5개의 연못이 있었다. 연못을 파서 나온 흙은 성벽 내탁부(內托部)를 쌓는데 사용했다. 수원화성은 성벽 바깥쪽은 성돌로 쌓고 안쪽은 흙을 쌓은 구조로 계획되었기 때문에 재료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였다. 다행히 팔달산을 비롯해 숙지산, 여기산 등에서 돌맥을 발견하여 성돌을 만들 수 있었고, 흙은 성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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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각루(방화수류정) - 보물 제1709호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0. 8. 4. 04:41
동북각루(방화수류정) - 보물 제1709호 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용두(龍頭) 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다. 군사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龍池)과 함께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정조는 이를 ‘현륭원(顯隆園)이 있는 화산(花山)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柳川)을 가리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방화수류정에는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보통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각루 1층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방화수류정에는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두고 창문을 설치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정조는 방화수류정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를 지었다.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