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
빨래터의 향수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2022. 2. 26. 20:15
빨래터의 향수 빨래터는 향수(鄕愁)의 공간이다. 이곳은 우리 어머니들의 쉼터였으며, 이웃과 이야기의 꽃을 피우는 정겨운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급속한 도시화와 물질문명의 발달은 우리에게 많은 편의와 윤택한 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었지만, 어느새 3대가 한데 어울려 살던 대가족과 가족 같은 정을 나누던 이웃을 그리워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바쁜 일상에 쫓겨 여유를 잃고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잠시나마 옛 추억을 환기시켜주고자 이 작품을 세운다. ‘빨래터의 향수’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가족 사랑'이라 읽어주셔도 무방하겠다. 이곳은 수원이 개발되기 이전의 빨래터로써 지역 어르신들의 고증과 자문을 받아 위치를 선정하고 작품을 제작하였다. 작가 : 김경환 수원시, 수원문화재단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 112-..
-
BEYOND THE SILENCE – 장용선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2022. 2. 17. 20:14
BEYOND THE SILENCE – 장용선 Stainless steel / 3,600mm × 2,600mm × H 6,000mm / 2021년 작가 장용선은 생명체가 가지는 속성에 대한 끈질긴 탐구를 예술로써 풀어낸다. 그의 작품은 금속으로 생명체의 절대적인 속성과 빛이 태동하는 순간들을 담아내어 그의 본질을 묻는다. BEYOND THE SILENCE는 조용히 생명활동을 영위하는 존재를 접한 경이로운 순간을 생명의 시작인 씨앗의 단면으로 모던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낮에는 태양의 빛을 머금어 오로라 색으로 빛나고, 밤에는 우주의 신비롭고 영롱한 은백색으로 빛나는 작품을 감상해 보길 바란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대평로 27 (정자동) 화서..
-
개항장 역사 시계탑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2022. 1. 29. 19:14
조형물의 공간 개입이 의미하는 볼거리와 공공성 : '개항장 역사 시계탑' '시계탑'은 개항장의 역사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시계와 탑은 그 형식에서 애꿎게도 이 자리에 와 있을 뿐이다. 아니다. 굳이 시계탑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여기가 바로 개항장의 역사를 몸서리치게 간직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계와 탑이 필요했다. 개항장의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역사에 대한 무지를 깨우는 장소다. 역사에 대한 왜곡을 반성케 하는 장소다. 역사를 역사로 바라보게 하는 장소다. 시계는 역사의 단면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개항장의 에피소드들을 애니메이션으로 담았다. 비 연속적인 내용들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함으로 정보 전달의 의미를 강조하고 싶었다. 정보를 모아 감상자들이 "역사"와 한데 뭉쳐 제 각각..
-
김구(金九)와 교감(交感)하다.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2022. 1. 24. 20:05
김구(金九)와 교감(交感)하다. 우리의 작은 목소리를 모아 김구에게 전달하다. 네 소원(所願)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大韓獨立)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自主獨立)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 백범일지 - 김구는 독립이라는 소원에 일생을 바쳐 살았습니다. 당신이 간직하고 있는 소원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소원을 김구에게 말해보세요,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 3가 8 청년 백범 김구 역사거리
-
그리운 어머니 – 백범 김구의 가족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2022. 1. 23. 19:14
그리운 어머니 – 백범 김구의 가족 청년 시절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 ~1949) 선생의 이름은 김창수(金昌洙)였다. 그는 21살이던 1896년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국모보수(國母報讐)’의 명분으로 조선인으로 변장하고 있던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土田讓亮)를 죽였다. 이것이 치하포 사건(鵄河浦 事件)이다. 일본인들이 우리의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弑害)한 것에 대한 앙갚음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황해도 해주감영(海州監營)에 체포됐다. 그에겐 도적질을 위해 일본인을 살해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그는 1896년 8월초 인천감리서로 이감됐다. 그의 아버지(김순영), 어머니(곽낙원)도 인천으로 생활 터전을 옮겨 아들의 옥바라지를 했다. 이때 ‘청년 김구’와 인천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리운 어..
-
백범 김구 선생의 인천항 노역 조형물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2022. 1. 21. 19:16
백범 김구 선생의 인천항 노역 조형물 인천 감옥으로 옮겨진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9)는 인천항 건설 공사장에 끌려가 강제로 일을 하였다. 백범일지에 당시 노역에 대해 ‘힘들어서 바다에 떨어져 죽고 싶었다.’고 기억할 만큼 인천항 공사 노동은 고된 일이었다. 인천광역시 중구 내동 노역(勞役)의 현장 아침저녁 쇠사슬로 허리를 마주 매고 축항 공사장에 일을 나갔다. 흙 지게를 등에 지고 10여 장의 높은 사다리를 밟고 오르내렸다. 여기서 서대문 감옥 생활을 회고한다면 속담의 ‘누워서 팥떡 먹기라’ 불과 반일(半日:반 나절)에 어깨가 붓고 동창이 나고 발이 부어서 운신을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면할 도리가 없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사다리로 올라갈 때 여러 번 떨어져 죽을 결심을 했다. - 백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