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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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송광사 종루 및 동종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21. 20:13
송광사 범종루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송광사 동종(松廣寺 銅鐘) 이 범종은 조선 숙종 42년(1716)에 만든 것으로 높이는 107cm, 밑 너비는 72cm이다. 종 어깨 위 가장자리에는 작은 꽃잎무늬 장식을 줄지어 세우고, 그 아래에 방패 모양 꽃무늬를 두었다. 그 밑에는 종의 둘레를 따라 구슬형 돌기 60개와 위아래를 구분하는 띠를 둘렀다. 아랫부분에는 작은 원 8개를 조각하고 원 안에 범(梵) 자를 새겼으며, 그 아래에 보살상을 배치하였다. 종의 밑자락에는 높이 6cm 정도의 덩굴 문양을 둘렀다. 범종에 새긴 글로 보아 이 종은 무등산 증심사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며 영조(1724~1776) 때 고친 적이 있다. 보물, 완주 송광사 종루(完州 松廣寺 鐘樓) 완주 송광사 종루는 십자형 평면 위에 다포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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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보령 성주사지(史蹟, 保寧 聖住寺址)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10. 19:19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성주사지 석등(聖住寺址 石燈) 통일신라 말기에 세운 석등이다. 지붕돌(屋蓋石, 옥개석)에 비해 등불을 두는 화사석(火舍石)과 받침 기둥(竿石, 간석)이 가늘게 만들어졌으며, 팔각형 지붕돌 위의 상륜부가 파손되었다. 높이는 220cm이고 재료는 화강암이며, 파괴되었던 것을 근래 수습하였다. 보물,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 화강암으로 된 이 석탑은 성주사의 불탑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2중 기단(二重 基壇) 위에 세운 5층 석탑으로 전체 높이는 634cm이다. 기단부와 옥개석(屋蓋石), 탑신석(塔身石)이 완만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져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경쾌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1층 몸돌에 사리공(舍利空)이 있으며 기단부와 1층 몸돌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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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西 三層石塔)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6. 21:15
보물,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西 三層石塔) 성주사지 금당지(金堂址) 뒤에 3기의 석탑 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이중 기단(二重 基壇) 위에 만들어진 삼층석탑으로 면석(面石)과 탑신석(塔身石)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撐柱)가, 지붕돌에는 4단의 층급 받침이 새겨져 있는 등, 통일신라 말기(9세기)의 전형적인 삼층석탑 양식을 띠고 있다. 화강암으로 되었으며, 높이는 443cm이다. 이탑은 지붕돌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는 불교 행사 때 금동판이나 기타 장식품 등을 매달아 탑의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현재 상륜부가 없어졌다. 이 탑은 승탑(浮屠, 부도)으로 추정되었으나 성주사 사적기(聖住寺 事蹟記)에 적힌 바에 따르면 정광(定光)·가섭(迦葉)·약사여래(藥師如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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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東 三層石塔)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5. 21:18
보물,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東 三層石塔)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은 금당(金堂) 터 뒤에 3기의 석탑 중 동쪽에 있는 탑이다. 이 탑은 승탑(浮屠, 부도)으로 추정되었으나 성주사사적기(聖住寺事蹟記)에 적힌 바에 따르면 정광(定光)·가섭(迦葉)·약사여래(藥師如來) 사리탑(舍利塔) 중의 하나로 추정된다. 석탑은 중앙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양 옆에 동 삼층서탑과 서 삼층석탑이 나란히 서 있다. 국내에는 이와 같은 가람배치는 이례적인 것인데 발굴조사 결과, 금당 앞에 오층석탑을 세워 1 탑 1 금당 형식의 가람배치를 조성한 후 뒤에 석탑 3개를 다른 곳에서 옮겨와 추가로 배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탑은 2중 기단 위에 세워진 삼층석탑으로 면석(面石)과 몸돌(碑身)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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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4. 20:06
보물,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 화강암으로 된 이 석탑은 성주사의 불탑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2중 기단(二重 基壇) 위에 세운 5층 석탑으로 전체 높이는 634cm이다. 기단부와 옥개석(屋蓋石), 탑신석(塔身石)이 완만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져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경쾌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1층 몸돌에 사리공(舍利空)이 있으며 기단부와 1층 몸돌 사이에 굄돌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통일신라(統一新羅) 시대의 전형적 석탑 양식은 2중 기단 위에 3층 석탑을 세우는 것인데, 이 석탑은 2중 기단 위에 5층 석탑이 올려져 있다. 이는 이곳이 옛 백제(百濟)의 영역이었으므로 백제탑과 신라탑의 양식이 혼합된 것으로 보거나, 이 시기에 나타난 다양한 탑 양식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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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中央 三層石塔)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1. 3. 21:13
보물,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中央 三層石塔) 성주사지 금당지 뒤의 3기의 석탑 중 가운데에 있는 탑이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국가를 상징하려고 초기에는 튼튼하고 높은 2중 기단(二重 基壇)을 가진 거대한 3층 석탑을 만들었는데, 통일신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3층 석탑의 규모가 작아진다. 이 석탑은 규모만 축소되었을 뿐 형식은 2중 기단 위에 3층 석탑을 세우는 통일신라 말기의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재료는 반려암(斑糲岩)이며, 높이가 410cm이고, 상륜부(相輪部)가 없어졌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며 날카로운 윤곽의 지붕돌이 특징이다. 이 탑은 승탑(浮屠, 부도)으로 추정되었으나 성주사사적기(聖住寺事蹟記)에 적힌 바에 따르면 정광(定光)·가섭(迦葉)·약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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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21. 12. 22. 19:11
보물,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 서울 세종 영릉 신도비(世宗 英陵 神道碑)는 최고의 성군이라 불리는 세종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452년(문종 2)에 세운 비석이다. 현재 비신이 심하게 부식되어 표면의 조각이 떨어져 나가 비문을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지만, 비문을 지은 정인지와 글씨를 쓴 이용의 이름은 확인할 수 있다. 이수는 2마리의 용이 서로 마주 보며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으로 매우 정교하고 생동감이 넘치게 조각되었다. 1469년(예종 1) 영릉을 경기도 여주로 옮기면서 서울 영릉에 있었던 신도비와 석물(石物)을 묻었다. 1691년(숙종 17)과 1738년(영조 14)에 영릉 신도비가 노출되었는데, 논의 끝에 다시 묻어 두었다. 1974년 옛 영릉 터를 발굴하여 비신과 이수를 발견하였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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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천흥사지 오층석탑(天安 天興寺址 五層石塔)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16. 20:14
보물, 천흥사지 오층석탑(天安 天興寺址 五層石塔) 천흥사터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거대한 모습으로, 고려왕조 시작 직후 석탑의 규모가 다시 커지던 당시의 흐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탑신을 바치고 있는 기단은 아래층이 너무 얕아 마치 1층으로 된 듯하다.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각 면마다 7개씩의 안상(眼象)이 촘촘히 조각되어 있다. 위층 기단의 4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각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겼다. 몸돌은 4면의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뚜렷하게 새겨놓았고,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줄어드는 비율이 비교적 완만하다. 지붕돌은 얇고 너비가 좁으며, 밑받침이 3단으로 매우 얕게 조각되었다. 경사면은 가파르다가 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