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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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각루, 방화수류정(東北角樓, 訪花隨柳亭) - 보물 제1709호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1. 9. 24. 19:12
동북각루, 방화수류정(東北角樓, 訪花隨柳亭) - 보물 제1709호 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이다. 용두(龍頭) 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했다. 군사 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있어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다. 정조는 이를 ‘현륭원(顯隆園)이 있는 화산(花山)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柳川)을 가리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방화수류정에는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보통 군사들의 휴식을 위해 각루 1층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방화수류정은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만들고 창문을 설치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정조는 방화수류정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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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水原 彰聖寺址 眞覺國師塔碑) - 보물수원사랑/문화재(文化財) 2021. 9. 11. 19:22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水原 彰聖寺址 眞覺國師塔碑) - 보물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 탑비는 고려말 승려 진각국사(眞覺國師) 천희(千熙, 1307-1392)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천희는 13살의 나이에 불교계에 들어섰고, 57세라는 늦은 나이에 중국 유학을 결심하여 1364년(공민왕 24)부터 2년간 원나라에서 선종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그는 귀국 후 국사(國師)에 봉해져 부석사를 보수하는 등 고려 말에 활약하였다. 천희가 76세가 되는 우왕(禑王) 8년(1382)에 광교산 창성사에서 입적(入寂)하자 고려 우왕이 진각국사(眞覺國寺)라는 시호를 내려줬다. 진각(眞覺)은 "진실로 깨닮음"이란 뜻이다. 이색(李穡, 1328~1396)이 비석의 글을 짓고, 승려 혜잠(惠岑)이 글씨를 새겨 우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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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제도금화형탁잔(銀製鍍金花形托盞) - 보물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8. 22. 19:03
은제도금화형탁잔(銀製鍍金花形托盞) - 보물 이 은제도금화형탁잔은 잔과 함께 잔을 받치는 잔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개 잔과 함께 한 벌을 이룰 때에 ‘탁잔(托盞)’이라고 명명한다. 이 탁잔은 표면에 도금이 고루 입혀져 금색이 완연하며, 잔과 잔 받침은 모두 육화형(六花形)을 띠며 잔 받침대에는 화문을 타출시켜 화려함과 정교한 세공기술을 더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은제도금 탁잔뿐만 아니라 은제 주전자, 은제 합, 팔찌 등에도 타출기법을 사용하여 화려한 장식문양을 시문하는 것이 크게 유행하였다. 고려시대 탁잔은 잔 받침대의 형태에 따라 일반적으로 2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연꽃이 폈을 때의 모습과 같은 앙련식(仰蓮式)과 연꽃을 엎어 놓은 모습과 같은 복련식(覆蓮式)으로 구분된다. 복련식 탁잔에는 탁과 잔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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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 보물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8. 17. 04:09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 보물 금동보살입상은 삼국시대 보살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높이 15.1㎝의 조그만 작품이다. 머리에는 특이한 형태의 관(冠)을 쓰고 있으며, 몸에 비해 다소 긴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있다. 체구는 자그마하지만 당당하고 강직해 보이며, 온몸을 감싸고 있는 옷 때문에 신체의 윤곽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옷은 좌우대칭을 이루면서 X자로 교차되며 날리듯 표현되어 힘이 넘친다. 손은 삼국시대 불상에서 유행하던 모습인데 몸에 비해 매우 크게 표현되었다. 왼손은 아래로 내려 새끼 손가락과 네번째 손가락을 구부렸고, 오른손은 위를 향해 손가락을 모두 펴고 있는 모습이다. 두 발 아래에는 역삼각형 모양의 둥근 대좌(臺座)가 있는데, 여기에 긴 촉이 붙어 있어 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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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 - 보물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8. 1. 04:07
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 (咸安 防禦山 磨崖藥師如來三尊立像) - 보물 방어산 절벽에 새겨진 마애약사삼존불입상으로 통일신라 애장왕(哀莊王) 2년(801)에 만든 것이다. 본존은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어서 약사여래상임을 알 수 있으며 얼굴이 타원형으로 길게 표현되었다. 어깨는 거대한 몸에 비해 좁게 표현되었고, 힘없이 표현된 신체에서는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 이는 불상 양식이 8세기의 긴장감과 활력이 넘치던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에서 현실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쪽의 협시보살은 모두 본존을 향하여 자연스럽게 서 있다. 왼쪽은 일광보살로 남성적인 강렬한 인상이고, 오른쪽은 월광보살로 눈썹 사이에 달무늬가 새겨져 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글이 새겨져 있어 확실한 연대를 알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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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대웅보전(龍珠寺 大雄寶殿) - 보물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7. 25. 04:04
장대석으로 기단을 만들어 대웅보전을 올렸고, 중앙에 대우석(大隅石)을 설치한 6단의 계단을 두었다. 대우석은 보통의 경우 사찰에서는 연꽃무늬, 당초무늬 등으로 장식하는데, 용주사는 이와 달리 삼태극(三太極), 비운(飛雲) 그리고 모란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는 용주사와 어깨를 맞대고 있는 융릉 정자각(丁字閣)의 대우석과 동일한 양식인데, 융릉(추존 장조와 현경왕후의 능)과 용주사가 불가분의 인연을 가지고 있는만큼, 융릉을 이전하는데 참여한 공장(工匠)들이 용주사를 짓는데도 관여하였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대웅보전 삼세불상(大雄寶殿 三世佛像) – 경기도 유형문화재 대웅보전 내의 삼세불상은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이다. 석가불을 주존으로 동쪽에 약사불과 서쪽에 아미타불이 협시하는 삼세불로서 절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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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칠장사 대웅전(安城 七長寺 大雄殿) - 보물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7. 13. 04:07
안성 죽림리 삼층석탑(安城 竹林里 三層石塔) - 경기도 유형문화재 원래 죽산면 지역 폐사지에 방치되어 있던 몇 개의 부재를 모아서 복원한 것을 2005년 11월 칠장사 대웅전 앞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전체 높이 363cm로 기단부는 단층이고 지대석은 상면에 호각형(弧角形)의 2단 괴임을 마련하였다. 탑신부는 3층을 이루고 있는데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은 돌)은 다른 석탑의 부재를 사용하였다. 1층 탑신석은 2매의 석재로 결구했는데, 문비(門扉)가 있는 부재는 가까운 밭에서 출토된 것을 옮겨온 것이고 다른 부재는 새롭게 보강한 것이다. 문비는 감실형태로 세로로 선을 그어 문을 표현하고 좌우에 원형 고리를 조각했다. 옥개석은 일부가 파손되기는 하였지만 1층부터 3층까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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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安城 七長寺 慧炤國師碑) - 보물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7. 12. 04:15
혜소국사비 비신(碑身, 머릿돌) 혜소국사비 귀부(龜趺, 받침돌) 혜소국사비 이수(螭首) 구름 위를 날고 있는 오조룡(五爪龍) 조각 오조룡 조각(五爪龍 彫刻) 비신의 양쪽 옆면에는 상하로 길게 두 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솜씨가 매우 뛰어나고 생동감 있게 조각하였다. 특히 용의 발톱이 다섯 개인 오조룡이다.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安城 七長寺 慧炤國師碑) - 보물 혜소국사는 고려 광종 23년(972)에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에 출가하였으며 17세에 융천사(融天寺)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국사는 말년을 칠장사에서 보내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83세가 되던 고려 문종 8년(1054)에 입적하였다. 고려 문종(文宗) 14년(1060)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이 비는 김현(金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