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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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서울 청계천 수표(淸溪川 水標)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14. 21:06
보물, 서울 청계천 수표(淸溪川 水標) 물의 높이를 재는 수표는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어 세종 23년(1441년)에 청계천에 설치했다. 이에 대해 성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돌로 만든 수표에 척촌(尺寸)의 숫자를 새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수표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수표교 위쪽 가운데 물속에 있었는데, 청계천을 덮으면서 장충단공원으로 옮겼다가 1973년 지금의 자리로 가져왔다. 이 수표는 커다란 받침 위에 육각기둥을 세우고 연꽃 문양을 새긴 덮개를 얹은 구조이다. 기둥은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며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육각의 긴 면을 향하게 하여 물살의 저항을 줄였다. 기둥에 10자까지 눈금을 파고 앞뒷면에는 숫자를 새겼는데, 눈금의 간격은 주척(周尺) 1자로 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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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 상설고문진보대전(詳說古文眞寶大全)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2. 1. 20:09
보물 - 상설고문진보대전(詳說古文眞寶大全) 이 책은 문종(文宗) 즉위년(卽位年, 1450)에 중국의 시문집인 ‘진보대전(眞寶大全)’을 활자로 찍어낸 활자본이다. 당대의 명필가(名筆家)인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의 글씨를 바탕 글자로 삼고 동(銅)으로 주성(鑄成)한 활자(活字)인 경오자(庚午字)로 찍은 것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20㎝, 세로 28.5㎝이고, 2권 1 책이다. 이 활자(活字)는 안평대군(安平大君)이 세조의 찬탈을 반대하다 사약을 받고 죽은 뒤 바로 경오자를 녹여서 을해자(乙亥字)를 주조하였기 때문에 경오자로 인쇄된 활자본은 매우 희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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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 옛 사진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1. 11. 30. 19:16
일제강점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봇대가 늘어선 팔달문 일제강점기, 사진엽서,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팔달문과 남공심돈 일제강점기, 사진엽서,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옹성의 홍예문이 훼손된 팔달문 일제강점기,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한국전쟁 이후의 팔달문 1960년대,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현재의 팔달문, 2021년 보물, 수원 팔달문(水原 八達門) 팔달문은 수원 화성의 남문이다. 정조는 팔달(八達)의 의미를 ‘산 이름이 팔달이어서 문도 팔달이며, 사방팔방에서 배와 수레가 모인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팔달문 주변은 삼남 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화성 축성 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장안문과 마찬가지로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甕城)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규모와 형식은 장안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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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수운잡방(需雲雜方)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1. 15. 20:02
보물 수운잡방(需雲雜方) ‘수운잡방’은 경북 안동의 유학자 김유(金綏, 1491∼1555)와 그의 손자 김영(金坽, 1577∼1641)이 저술한 한문 필사본 음식 조리서이다. 제목의 ‘수운(需雲)’은 『주역(周易)』의 “구름이 하늘로 오르는 것이 ‘수(需, 需卦)’이니, 군자가 이로써 마시고 먹으며, 잔치를 벌여 즐긴다(雲上于天, 需, 君子以飮食宴樂).”에서 유래한 것으로, 연회를 베풀어 즐긴다는 의미이다. 곧 ‘수운잡방’은 즐겁게 먹을 음식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이라는 의미이다. 이 책은 김유가 지은 앞부분에 86항, 김영이 지은 뒷부분에 36항이 수록되어 모두 122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14종의 음식 조리 및 관련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항목을 분류하면 주류(酒類) 57종, 식초류 6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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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寶物), 수원 방화수류정 (水原 訪花隨柳亭)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1. 11. 13. 22:11
보물(寶物), 수원 방화수류정 (水原 訪花隨柳亭) 조선 정조 18년(1794) 건립되었으며, 화성의 동북각루(東北角樓)인 방화수류정은 전시용(戰時用)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조성된 건물이다. 수원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정명도(程明道)의 시(詩) “운담풍경근오천(雲淡風輕近午天), 방화수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으며, 편액은 조윤형(曺允亨, 1725~1799)의 글씨이다. 평면은 “ㄱ”자형을 기본으로 북측과 동측은 “凸”형으로 돌출되게 조영하여 사방을 볼 수 있도록 꾸몄으며, 조선 헌종 14년(1848)에 중수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되었다. 주변 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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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용암사 동·서 삼층석탑 - 보물 제1338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0. 19. 20:13
옥천 용암사 동·서 삼층석탑(沃川 龍巖寺 東·西 三層石塔) - 보물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 13년(552) 때 의신(義信)이 세운 사찰이다. 이 석탑은 일반적인 가람배치와 달리 대웅전의 앞이 아니라 사방이 한눈에 조망되는 북쪽 낮은 봉우리에 있다. 석탑이 사방의 조망권이 확보된 위치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르러 성행했던 산천 비보(山川裨補) 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천 비보 사상이란, 탑이나 건물을 건립해 산천의 쇠퇴한 기운을 북돋아준다는 것이다. 같은 모양의 석탑 2기는 이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자연암반 위에 건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층 기단을 갖추고 있으며, 동탑은 4.3m, 서탑은 4.1m로 규모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서탑의 경우 2층과 3층 탑신의 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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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 초상(朴文秀 肖像) - 보물 제1189-1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10. 13. 20:17
박문수 초상(朴文秀 肖像) - 보물 제1189-1호 조선 영조 때 문신인 박문수를 그린 초상화 2점이다. 박문수(1691~1756)는 조선 영조 때의 문신으로 1723년 병과에 급제한 후 암행어사로 활약하면서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하여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데 힘썼다. 종가에 전해오는 2점의 초상은 크기가 다른데, 1점은 가로 100cm, 세로 165.3cm이고 다른 1점은 가로 45.3cm, 세로 59.9cm이다. 2점 가운데 크기가 큰 초상화는 38세의 젊은 시절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공신상 초상화의 전형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 호피가 깔린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상으로 두 손은 맞잡고 소매 속에 넣은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발은 받침대 위에 팔(八) 자로 얹어 놓았다. 초록색 관복을 입고 가슴에는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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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공심돈, 화서문 - 수원 화성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21. 10. 9. 04:16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 보물 제1710호 * 1796년(정조 20) 창건 * 1934년 수리 서북공심돈은 화성 서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보통 돈대(墩臺)는 성곽과 떨어진 높은 곳에 세워 적을 감시하는 시설이나, 서북공심돈은 서북쪽 성벽이 꺾이는 위치에 설치했다. 치성 위에 벽돌로 3층의 망루를 세우고 꼭대기에는 단층의 누각을 올려 군사들이 감시할 수 있도록 하고, 외벽에는 화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을 뚫어 공격 기능까지 갖추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완성된 화성을 둘러보던 정조는 서북공심돈 앞에 멈춰 “우리나라 성곽에서 처음 지은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